[ 2일 오전 서울 마포구보건소에서 한 의료진이 보건의료단체장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앞두고 백신을 주사기에 분주(백신을 주사기에 나눠 옮김) 하고 있다 / 사진 = 뉴시스 ]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 후 혈전 발생과 관련한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3번째 백신 접종 후 혈전 사례가 나온데다 AZ 백신과 뇌혈전의 인과성을 시사하는 유럽약품청(EMA) 고위 관계자의 발언까지 나오면서 혼란은 더욱 증폭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 AZ 백신과 혈전의 인과성을 인정할만한 근거는 발견되지 않아 백신 접종을 중단하거나 제한할 이유는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7일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지난 5일 신고된 중증 사례 중 1건이 혈전증 진단을 받아 당국이 백신과 연관성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해당 환자는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으로 지난달 17일 AZ백신을 접종하고 29일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났다. 현재 병원에 입원해 혈전 용해제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준 예방접종추진단 이상반응조사지원팀장은 이날 백브리핑에서 "현재 조사된 바로는 접종 후 12일이 경과된 시점에 혈전 증상이 나타났다"며 "혈전은 다리와 폐에서 확인됐다. 의무기록 상으로는 '폐혈전색전증'인데 최종 기록은 '심부정맥혈전증'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백신 접종 후 혈전 발생 사례는 3건으로 늘었다.

지난달 6일에는 AZ 백신을 맞고 숨진 60대 여성의 부검에서 혈전이 발견됐다. 또 지난달 10일 AZ 백신을 접종한 20대 구급대원은 희귀 혈전증인 뇌정맥동혈전증(CVST) 판정을 받고 입원했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AZ 백신을 접종한 유럽에서도 혈전 관련 자료들이 나오고 있다. 영국 당국은 지난 3일 AZ 백신 접종자 1800여만명 중 30명에게 혈전이 발생했고, 7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방역 당국은 백신과 혈전의 연관성은 없어 백신 접종은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질병청 예방접종전문위원회는 지난달 20일 현재까지 확인된 국내외 자료를 토대로 AZ 백신과 혈전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계보건기구(WHO)나 EMA도 접종 권고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백신과 혈전증의 연관성을 시사하는 EMA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면서 다시 한번 혼란이 커지고 있다.

마르코 카발레리 EMA 백신 전략 책임자는 6일 이탈리아 일간 일 메사제로와의 인터뷰에서 "내 의견으로는 우리는 지금 (혈전과) 백신의 연관성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며 "혈소판 결핍 뇌혈전증이 조사해야 할 주요 사건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특히 뇌정맥동혈전증과 관련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반적인 혈전증은 인구 1000명 당 1명 가량 발생하는 흔한 병이지만 뇌정맥동혈전증은 인구 100만명당 5명 정도에서만 발견되는 매우 희귀한 질환이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뇌정맥동혈전증이 백신 접종 후 자연 발생보다 다소 많이 보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당국은 AZ 백신 접종 후 인구 10만명당 1명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AZ 백신 접종과 매우 드문 혈전 질환 사이에 인과관계가 점차 증명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다른 백신에서는 이런 현상이 보고되지 않는 점은 내 판단의 중요한 근거"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7~8일로 예상되는 EMA의 백신 관련 재검토 결과 발표에 관심이 모아진다. 우리 방역 당국도 유럽의 발표 이후 백신 접종과 관련한 입장을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접종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뇌정맥동혈전증처럼 매우 드문 질환이 발생할 위험보다 코로나19 예방이라는 이익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혈전증의 원인이 반드시 AZ 백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럽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혈전증 사례가 젊은 여성들에게서 관찰됐기 때문에 원인이 피임약 복용 등에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혈전 발생이 피임약 복용의 부작용 중 하나라는 것은 이미 의학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혈전 전문가인 김양기 순천향대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유럽에서는 피임약을 많이 먹는다. 꼭 피임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리불순과 이상자궁출혈 때문에도 먹는다. 그런데 피임약을 먹게 되면 비정상적인 혈전의 형성이 증가할 수 있다. 폐색전증과 심부정맥혈전증이 많고 드문 곳에서도 혈전이 생긴다. 그 중 하나가 뇌 정맥에 생기는 혈전증"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백신과 혈전증의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접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맞지 않다"며 "예방접종은 손실보다 이득이 크다. 이 시기를 놓치면 집단면역은 불가능하다. 집단면역 70%를 맞추지 못하면 우리는 코로나19 시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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