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식 펀드 가입하는데 평소보다 20분 정도 더 걸린 것 같네요." (송파구 A지점)
 "읽어보지도 않을 종이를 왜 이렇게 많이 줘요?" (구로구 B지점)
 "왜 이리 설명이 길어?" (강남구 C지점)

모든 금융사가 판매하는 모든 금융상품에 6대 판매규제를 적용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된 25일, 은행 영업점에서는 오전부터 혼선이 빚어졌다. 상담시간이 길어지자 대기공간도 붐벼 고객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풍경이 곳곳에 연출됐다. 법 시행에 따라 금융사 영업방식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소법은 금융소비자가 낯선 금융상품에 덜컥 가입했다가 손해를 보는 일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법이다. 그간 일부 상품에만 적용됐던 6대 판매규제(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설명의무 준수·불공정영업행위 금지·부당권유행위 금지·허위과장광고 금지)를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적용대상은 은행, 보험사, 금융투자사, 여신전문회사, 저축은행, 신협, P2P업체, 대형대부업체 등이다. 다만 농협과 수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등은 금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행법상 금융위원회가 이들의 영업행위를 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 이유가 됐다.

은행을 찾는 고객들은 이전보다 상세해진 상품 설명 과정, 투자상품 가입시 녹취 진행 등에 불만을 토로했다. 금소법 시행 이후 정기예금에 가입하더라도 상품설명서, 약관 등 출력물을 고객에게 제공해야 한다. 고령층인 고객들은 이메일 등 전자방식으로 받아보기 힘들어 출력물 여러장을 받아가야 했다.

다만 금소법 시행으로 금융소비자의 권리는 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앞으로 청약철회권이 생긴 금융소비자는 대출, 보험, 펀드 등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상품에 가입한 뒤 마음이 바뀌면 상품 가입을 취소할 수 있다. 또 금융사의 불완전판매 등을 통해 상품에 가입했을 경우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위법계약해지권도 행사할 수 있다.

금융사들의 부담과 책임은 무거워졌다. 불완전판매 등 불공정 영업행위를 한 금융사는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소비자가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금융상품에 가입하고 돈을 잃었다며 금융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엔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사실도 금융사가 입증해야 한다.

일단 시행은 됐지만 금소법의 원활한 시행과 정착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규제의 적용 범위는 광범위한 반면 세부 규정이 모호한 탓에 현장에서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KB국민은행은 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스마트텔러머신(STM)에서 입출금 통장을 개설하는 서비스를 한시 중단했다. 하나은행도 딥러닝 인공지능 로보어드바이저 하이로보의 신규 거래와 인공지능 채팅상담 시스템 하이챗봇을 통한 예·적금 가입을 중단했다. 금소법 시행에 따라 업무처리 프로세스의 개선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금소법 시행으로 기존 판매절차 재수립과 이에 따른 전산시스템 구축 등에 어려움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울러 구체적인 법 적용 기준이 모호해 우선은 법률리스크를 피하는 데 급급한 상황이라는 푸념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소법 시행에 따른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선 금융사가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며 "시행 초기에는 은행, 보험, 카드 등 전체 금융권에 혼란이 올 수 밖에 없다. 법 시행에 맞춰 시스템을 개편하고 제도를 개편할 시간적 여유가 너무나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도 "금소법에 여전히 모호한 점이 많아 금융사 현업 직원들의 어려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직원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서는 법 기준이 명확해야 하고, 세세한 부분까지도 이해시킬 필요가 있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영업 위축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법 시행 전부터 개정안도 쏟아지자 그만큼 수정하고 보완할 내용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발의된 금소법 개정안은 총 9개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의 준비 부족과 적응 기간 등을 고려해 유예기간을 두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는 현장에서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체 시스템에 반영할 시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해 일부 규정은 최대 6개월 간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권의 건의사항 청취를 이어가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비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