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은퇴하면서 고정 수입이 없어진 정모씨(71)는 올해 내야 할 보유세를 생각하면 벌써 걱정이 앞선다. 서울 성동구의 33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정 씨는 올해 보유세로 240만원을 내야 한다. 서울 외곽의 작은 평수로 이사하는 방법을 고민했지만 30년 넘게 살고 있는 터전을 옮기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

정 씨는 "경제활동을 못해 소득도 없는데 200만원이 넘는 보유세를 내야 하니 벌써부터 걱정"이라며 "우리 같은 노인들은 보유세를 감당하는 게 쉽지 않다. 이 나이에 이사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이 처럼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방침에 따라 점점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면서 고정 수입이 없는 은퇴자들의 버티기가 힘겨워질 전망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2021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예정안에 따르면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보다 19.08% 오른다. 서울은 19.91%, 경기도는 23.96% 오른다.

공시가격이 오르면서 아파트 보유자들이 내야하는 보유세 부담도 덩달아 늘어난다. 특히 올해 서울에서는 노원구(34.66%), 성북구(28.01%), 강동구(27.25%), 동대문구(26.81%), 도봉구(26.19%) 등의 공시가격이 크게 올라 강북지역 주민들의 보유세도 예년보다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공시가격 6억원 이하 1주택자의 세금 부담은 크지 않지만 6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은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공시가격이 9억원은 넘는 종합부동산세 대상자들은 부담이 더 커진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이 분석한 보유세 시뮬레이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실거래시세가 12억원인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파크4단지 전용면적 84.76㎡의 공시가격은 8억1363만원이 될 전망이다. 이는 자치구별 평균 상승률을 적용해 계산한 것이다.

이 아파트 보유세는 223만원으로 작년 175만원 보다 47만원이 늘어나게 된다.

공시가격이 8억4940만원(1월 실거래 시세 13억원)인 서울 동작구 상도동 상도더샵1차 전용면적 84.92㎡의 보유세는 235만원으로 작년 185만원보다 50만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공시가격이 9억원이 넘어 종부세 대상인 아파트의 세 부담은 더 크게 늘어난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 텐즈힐' 전용면적 84.92㎡의 올해 공시가격은 11억3995만원으로 추산된다. 실거래가는 16억원 가량이다.

이 아파트 올해 보유세는 379만으로 지난해 261만원 보다 107만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마포구 대장주 아파트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면적 84.59㎡의 올해 보유세는 535만원으로 작년 343만원보다 191만원 증가한다.

작년 전반적으로 집값이 많이 오르면서 강남지역이 아니라도 고가 아파트를 한 채만 갖고 있어도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강남 고가 아파트의 경우 보유세 부담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114.17㎡ 보유세 부담은 작년 2075만원에서 올해 3968만원으로 1893만원 오를 전망이다. 이 아파트 올해 공시가격은 33억4700만원이다.
 
특히 올해 종부세 부과 대상인 공시가격 9억원 이상 주택은 전국 총 52만4620가구로 작년(30만9361가구) 보다 21만5259가구(69.6%)나 늘어난다.
 
이에 따라 보유세를 많이 부담해야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고정수입이 없는 은퇴자들은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노년층에서는 소득으로 보유세 감당이 어렵다는 의미의 '보유세 푸어'라는 용어까지 유행하고 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서울 아파트값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주택 가격은 평가이익인데 반해 세금은 현금으로 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가 주택보유자들이 부담을 크게 느낄 것으로 보인다"며 "1주택자는 주택을 팔 수 없기 때문에 고스란히 현금 부담만 가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시가격이 6억원 이하인 아파트 한 채를 보유했다면 보유세가 작년 보다 줄어들 수 있다. 공동주택 중 공시가격 6억원 이하 비중은 92.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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