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 '스푸트니크V'의 국내 위탁생산 경쟁이 한치 양보도 없는 '전쟁'으로 비화할 전망이다. 백신의 생산 부족이 시달리는 러시아측이 국내에서 공격적으로 위탁 생산 가능 업체 공략에 나서면서다.
'스푸트니크V' 위탁생산을 추진 중인 업체는 한국코러스(지엘라파 자회사)를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과 휴온스글로벌 주도의 컨소시엄 등 2군데다. 컨소시엄에 들어있는 업체만도 10개 가까이 된다. 또 국내 굴지의 백신 전문 대기업 A사도 호시탐탐 '스푸트니크V' 위탁생산에 뛰어들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일 서울에 도착한 러시아 백신 대표단이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위탁생산 경쟁은 더욱 뜨거워진 느낌이다. 방한단은 '스푸트니크V' 백신 개발사인 '가말레야 센터' 기술진과 백신의 해외생산및 유통을 맡고 있는 러시아 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들로 구성됐다.
RDIF 측과 일찌감치 위탁생산 계약을 맺고 상업생산에 박차를 가해온 한국코러스 컨소시엄은 대표단과 스푸트니크V 백신의 상업생산을 위한 GMP(의약품품질관리기준, Good Manufacturing Practice) 인증과 뱃지(초도 생산 물량) 검수 결과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발주자인 휴온스컨소시엄은 신속한 기술이전과 시생산을 위한 시설 점검 등에 나섰다. 백신 대기업 A사는 자사의 뛰어난 생산 인프라를 러시아측에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 쪽은 역시 대표단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진 휴온스컨소시엄이다. 이 컨소시엄은 휴온스글로벌을 중심으로 프레시티지바이오파마, 휴메딕스, 보란파마 등으로 구성됐다.
러시아 대표단의 2주일 자가격리 면제 등 방한 편의를 제공한 휴온스컨소시엄 측은 당초 러시아 측의 비공개 방문 요청을 받아들여 경향신문과의 회견(8월 2일)에서 "러시아 기술진의 입국및 활동 일정은 007 작전에 버금가는 비공개 대외비"라고 강조하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대부분 공개했다.
그러나 대표단과 A사와의 미팅을 주선한 러시아 전문 컨설팅 업체는 "러시아 측이 '컨피덴셜'(비밀 협의)을 요청했다"며 상세한 내용 공개를 꺼렸다.
휴온스컨소시엄 측에 따르면 RDIF의 드미트리 쿨리쉬 기술고문(일부에서는 기술담당 이사로 호칭)이 이끄는 대표단은 지난 9일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에서 컨소시엄 업체들과 '킥오프' 회의를 갖고, 13일에는 휴메딕스의 생산 시설을 둘러봤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는 컨소시엄에서 백신 원액 생산(DS)을, 휴메딕스는 완제 생산(DP, 백신의 바이얼 주입, 완제품 포장) 공정을 각각 담당한다.
뒤이어 RDIF 계약담당 책임자인 블라디미르 스빈초프 이사와 스베틀라나 바에바 수석 전문위원이 14, 16일 충북 오송 백신센터를 찾아 위탁생산 본계약 전 사전점검을 시작했다고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측은 17일 밝혔다. 쿨리쉬 기술고문 등 대표단 일부는 14일 한국을 떠났다.
바이러시아 취재를 종합하면 방한한 러시아 대표단의 공격적 행보는 예상을 벗어날 정도다. 그만큼 해외 위탁생산 시설 확보가 화급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표단은 행적이 공개되지 않는 기간(10~12일)에 A사의 생산 시설을 둘러보는 등 기술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컨설팅 회사 대표는 "공장 방문 등 기술협의를 진행했으나, (위탁 생산 계약을) 최종 결정할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며 "앞으로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백신 기술 이전의 핵심은 역시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를 대상으로 한 원액 생산이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는 올해 초 RDIF측으로부터 백신 위탁생산 여부를 타진받고 휴온스글로벌과 협의해 컨소시엄을 꾸렸다고 한다.
러시아가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측에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이 업체의 러시아내 비즈니스 성과를 인정한 결과로 추정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싱가포르 법인)는 지난 2018년부터 항암제 바이오시밀러를 러시아에 공급하는 등 러시아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확대해 왔다. 지난 4월에는 러시아 제약업체 '팜파크'(Фармапарк)와 항암제 바이오시밀러 '베바치주맙(бевацизумаб, 오리지널 약은 로슈 Roche의 아바스틴Авастин)의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