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선거에서 내건 주요 부동산 공약을 차질없이 수행할 지 관심이 모아진다.

오 시장은 현 정부가 금기시하는 민간주도의 재개발·재건축을 전면에 내건 '스피드 주택공급'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오 시장은 향후 5년간 36만호의 주택을 공급기로 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만5000호를 민간 개발로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35층 룰 및 용적률 제한,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재개발·재건축 관련 규제를 완화 또는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또 강남·북 균형발전 프로젝트로 비강남권 지하철과 국철 구간 일부를 지하화해 지역 거점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오 시장은 도봉구 창동 차량기지에 돔구장을 만들고 그 밑에 스타필드 같은 대형 쇼핑공간과 바이오메디컬 단지를 짓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이를 통해 서울 제4의 도심을 동북권에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오 시장이 규제 완화를 추진하자 재개발·재건축 규제에 억눌려 있던 압구정동, 개포동, 잠원동, 잠실동, 여의도, 목동, 상계동 등의 오래된 아파트단지들에서 개발 기대감에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5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05% 올라 지난주와 상승률이 같았으나 송파구(0.10%)와 노원구(0.09%), 강남·서초구(0.08%), 양천구(0.07%) 등 재건축 '호재'가 있은 가격 상승률이 높았다.

하지만 오 시장에게 '표심' 외 정책 추진을 위한 지원군이 없다. 당장 서울시의원 109명 중 101명, 서울 시내 구청장 25명 가운데 24명, 구의회 의원 369명 중 219명이 더불어민주당이다. 입법권을 쥔 국회도 여당이 장악했다.

35층 층높이 제한이나 용적률 완화 등은 시의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아파트 재건축, 분양가 상한제, 초과이익환수제, 지하철이나 국철 구간 일부 지하화 등도 시장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부 허락을 받거나 관련 법령을 바꿔야 하며, 때로는 구청장의 협조도 필요하다. 서울시의 정책 결정 라인에 있는 주요 공무원들이 모두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의 정책에 익숙한 인사들이라는 점도 오 시장에게는 큰 장애물이다.

정부는 공공개발 위주의 주택 정책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8일 열린 부동산시장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투기수요 억제와 실수요자 보호, 불공정 거래 근절 등 부동산 정책의 큰 틀은 흔들림 없이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택공급은 후보지 선정, 지구 지정, 심의·인허가 등 일련의 행정 절차상 중앙정부·광역지자체·기초지자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이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좌충우돌하고 정부가 강력하게 제동을 걸 경우 생산적 논의는 없이 갈등만 불거질 수 있다. 다만 정부도 2·4 대책에서 제시한 서울 도심 32만호 공급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려면 서울시장의 협조가 필수적이라 정부와 오 시장 간 어느 정도 의견 주고받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 시장이 민심을 위해 각종 규제를 풀더라도 서울 집값이 다시 불안 장세를 보이면 거센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집값 안정을 바란 서민층이나 20∼30대 젊은층이 강하게 반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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