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하돈'이라 부르고 '복 맑은 탕' 유행하기도
중국서 정사 태만의 상징, 30㎝길이 산란기 참복
30여명 치사량 독 지녀


분소식당(경남 통영) '졸복국'

망신당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어쭙잖은 내공으로 첫 음식 칼럼 집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오래된 맛집>이란 책을 두해 전에 냈다. 나름 고전들도 뒤져보고 조선왕조실록도 슬쩍슬쩍 봤다.

'망신'은 문종2년 5월14일의 기록 중 '복어'에서 시작되었다. 문종이 39세의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떠난 날의 기록 중, 아버지 세종에 대한 효성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세종世宗께서 일찍이 몸이 편안하지 못하므로 임금이 친히 '복어鰒魚'를 베어서 올리니 세종이 맛보게 되었으므로 임금이 기뻐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는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서 '복어鰒魚'는 전복이다. 조선후기의 생활백과사전인 <규합총서>에도 우리가 말하는 복어는 '하돈河豚'이라고 표기한다. 즉, 조선시대 복어는 전복이고 우리가 말하는 생선 복어는 '하돈'이라고 했다. 문종이 올린 것은 전복이다.

이걸 깜빡하고 온갖 아는 체로, 문종이 태자 시절 생선 복어를 올렸다고 했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책이 나온 후 발견하고 내심 언젠가 스스로 밝혀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왕의 밥상>(함규진 저)에서 틀린 내용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차라리 왕조실록을 보지 않느니만 못했다.

'서시유', 서시의 유방인가 서시의 젖인가?  

<규합총서>에서는 우리가 엉터리로 알고 있는 또 다른 내용도 정확하게 밝힌다. 복어 마니아들은 다 아는, 이른바 '서시유西施乳' 이야기다. 서시는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미녀로 중국 4대 미인으로 손꼽힌다. 복어의 맛을 두고, 미모로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의 유방이라고 했으니 얼마나 많은 남정네들이 복어 살을 두고 침을 흘렸으랴? <규합총서>에서는 복어의 이리, 즉 수컷의 정자 덩어리를 잘못 건드리면 터져서 국물이 온통 '젖'같이 뿌옇게 번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복어 이리는 잘 묶어서 익혀 먹으라고 적었다. 국물이 '젖' 같이 뿌옇게 번진다는 걸 '젖=유방' '서시의 유방'이라고 생각했으니 참 '에로틱한 오해'이다.
 

할매집원조복국(부산) '복 무침'

예나 지금이나 복어의 독은 늘 문제였다. 조선시대에도 복어를 잘못 먹고 죽은 경우가 있었고 '복어 독 살인사건'도 있었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서는 <동의보감>을 인용하여 "모든 물고기 중에서 하돈(복어)이 가장 독하며 그 알은 더욱 독하여 중독된 자는 반드시 죽게 된다"고 했다.

일본은 1960년대에 복어 알, 내장 등을 잘못 먹고 죽었다는 신문기사가 자주 나왔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까지 복어 독 중독으로 죽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정상적으로 복어를 먹었을 때는 문제가 없다. 복어를 조리하려면 별도의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엄히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사람들이 먹고 죽기도 하는 생선을 이토록 찾는 걸 보면 역설적으로 복어가 진짜 맛있는 생선임을 알 수 있다. 하기야 중국의 소동파蘇東坡는 일찍이 "복어는 목숨과도 바꿀 만한 맛"이라고 했다. 그는 복어 요리를 좋아하여 "복숭아꽃이 질 무렵 강을 따라 올라오는 복어를 먹느라 정사를 게을리 했다"는 지청구도 들었다. 중국 삼겹살 찜인 '동파육東坡肉'은 소동파의 선정善政에 감격한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바친 데서 비롯되었다. 동파육은 선정의 상징이고, 복어는 정사 태만의 상징이니 생선의 운명도 참 묘하다. 

'복어 맑은 탕'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복어는 우리나라에서만 약 30종 가까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참복, 까치복, 황복, 은복, 밀복 등 몇 종류에 불과하다. 산란기 참복의 경우 길이가 30cm 정도면 약 30여 명의 치사량에 해당하는 독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대부분의 복어들이 양식이라서 독성이 없어졌다는 말도 들린다. 속설이다. 
 

삼호복집(서울) '복 뚝배기'

복어 요리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전래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는 않다. 조선시대에도 복어요리는 있었고 특히 오늘날 '복어지리'라고 표현하는 '복 맑은 탕'도 당시의 백과사전이나 음식 책에 나올 정도로 유행했다. 다만 일본인들은 참치, 도미 등 몇몇 생선에 대해서는 유난을 떠는 경향이 있다. 복어도 그중 하나일 뿐이다. 

예전에는 재일교포나 일본에서 복어요리를 배운 사람들이 전문점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비싼 복어 관련 음식점들이 대중화되고 1980년대를 지나면서 서울에도 복어 전문점이 자리를 잡았다. 

서울 서교동 서교호텔 뒤편의 '신원복집' ,신촌로터리 현대백화점 옆의 '삼호복집' ,충무로 '부산복집' 등이 대략 이 무렵 자리를 잡은 복어전문점들이다. '신원복집'은 다진 마늘을 많이 넣고 끓인 맑은 탕이 좋고 '미나리 인심'도 후하다. 나이가 많은 두 형제가 운영하는데 동생이 형 같고, 형이 동생 같다. 종업원들도 오래 근무하니 늘 푸근하다. '삼호복집'은 신촌과 서초동에서 운영하고 있다. 양념 하지 않은 복 껍질도 좋다. 

부산은 '탕'이라고 하지 않고 '복국'이라고 한다. 원래는 새로 끓이지 않고 큰 솥에서 한 그릇씩 퍼주는 식이다. '금수복국'은 서울 도산사거리로 진출했고 현지에서는 여전히 '초원복국'이나 '할매집원조복국'도 유명하다. 

"복국은 역시 통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통영의 시장 통 '분소식당'을 최고로 치는 이들도 많다. 통영(충무)의 복국은 서울로도 진출했다. 강서구청 부근의 '충무호동복'이나 압구정동 부근 '충무상회'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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